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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학대 은폐한 가톨릭 교회의 역사

출처 :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과 시어도어 매캐릭 전 추기경(오른쪽). AP/연합뉴스. “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 미 추기경 성학대 의혹 방관” 교황청, 매캐릭 전 추기경 사건 관련 2년만에 진상보고서 공개 의혹 다루는 과정서 실수 인정…“고의적 은폐는 없었다” 부인

 

전 세계로 드러난 조직적 아동 성범죄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범죄는 일부 지역의 일탈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진 조직적 문제다. 2002년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된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폭로는 유럽, 호주, 남미 등지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드러나며, 수십 년간 지속된 범죄와 체계적인 은폐의 실태를 전 세계에 알렸다.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범죄는 오랜 시간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었고, 그 규모는 국가를 초월해 방대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독립조사위원회가 지난 70년간 약 33만 명의 아동이 성직자에 의해 학대당했다는 충격적인 추산을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성범죄가 조직적으로 은폐되었으며, 피해자의 80%가 남자 어린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이는 교회가 신자들의 신뢰를 오랫동안 악용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요 사례와 피해 규모

201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6개 교구에서 300명이 넘는 사제들이 수십 년에 걸쳐 1,000명 이상의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일부 가해 사제는 미성년자를 임신시켜 낙태를 돕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으며, 심지어 7세 아동을 강간한 사실을 자백한 자조차 단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보고서는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벌어진 일”이라고 명시하며, 이러한 범죄가 특정 지역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교회 전반에 걸쳐 만연했던 악습임을 강조했다.

아일랜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정부 조사를 통해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수만 명의 아동이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학대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호주에서는 국가조사위원회가 가톨릭 사제의 7%가 아동 성범죄에 연루되었다고 발표했으며, 교회는 2017년까지 피해자 수천 명에게 약 2억7천만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비공식적으로 지급한 바 있다.

교회 내 은폐와 책임 회피의 방식

가톨릭 교회 지도부는 가해 성직자들을 처벌하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했다. 교구장 주교들은 문제 사제를 다른 본당으로 전보시키는 방식으로 사건을 은폐했으며, 피해 사실을 알고도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렸다. 교회 내부 문서와 독립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 수뇌부의 우선순위는 피해자 보호나 정의 실현이 아닌 교회의 명예 유지였다. 아일랜드 더블린 교구의 조사보고서는 교회가 “비밀 유지, 스캔들 회피, 교회의 평판과 자산 보호”에만 집중했고, 아이들의 복지와 피해자에 대한 정의는 뒷전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회는 교회법조차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고, 세속 법률의 개입을 피하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1997년, 아일랜드 주교들이 성범죄를 경찰에 의무 보고하려 하자 바티칸은 이를 저지했고, 당시 더블린 대주교는 교황청의 협조 태도를 “참담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교황청 고위층 역시 조직적 은폐에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아동 성추행 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주교가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고, 이를 감싸며 “신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우위”라는 망언을 한 추기경도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교리성 장관을 지낸 추기경이 문제 사제를 옹호하고 은폐에 가담했으며, 이 결정에 교황이 재가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교회 조직 전체가 범죄 은폐에 체계적으로 가담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해자에 대한 미온한 처벌 실태

가해 사제들이 적발되었음에도, 교회는 내부 징계나 명예로운 은퇴 권고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사법적 처벌은커녕 교회 내에서 승진하거나 영전까지 누렸다. 미국에서는 가해 사제가 주교로 승진한 사례도 존재하며, 문제 제기 이후 다른 교구로 조용히 이동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기도 했다. 법적 책임은 거의 묻지 않았으며, 2011년까지 아일랜드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 성직자는 6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역시 2002년 이후 일부 주교가 직무 태만으로 기소되었으나, 이는 극히 일부에 해당하며 대부분은 공소시효 만료 또는 교회 측 방해로 기소되지 못했다.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들조차 2021년 바티칸이 여전히 사법 절차에 비협조적이며,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배상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태도는 교회가 법과 도덕의 심판에서 예외적 존재라도 되는 양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며,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2차 피해를 안겼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교황청의 미온한 대응

긴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낸 피해 생존자들은 교회의 배신과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렸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시절 당한 성폭력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고, 신앙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마저 붕괴시켰다. 프랑스의 한 피해자 단체 대표는 교회의 은폐를 “수십 년간 대규모 범죄를 가능하게 한 배신”이라고 규탄하며, 이는 “신뢰, 도덕,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가 강조하던 사랑과 정의는 정작 스스로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교황청도 뒤늦게 사과와 대책을 내놓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교회 내 성학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심각한 모순”이라 언급했고, 베네딕토 16세는 일부 피해자들과 면담하며 참회를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칠레 성추문 사건 대응 실패에 대해 “비극적 오류”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전 세계 주교단을 소집해 성범죄 방지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피해자들 사이에서 “말뿐인 회개의 제스처”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질적인 가해자 처벌과 정보 공개 없이는 신뢰 회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가해 성직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과 자동 파문을 약속했으나, 오랜 세월 쌓인 불신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추락하는 도덕적 권위와 교회의 쇠퇴

반세기 이상 이어진 성범죄와 교회의 무책임한 대응은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더 이상 교회는 영혼을 인도하는 도덕적 나침반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고도 은폐한 위선적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신자 이탈과 교회에 대한 불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처럼 한때 가톨릭 신앙이 생활 중심이었던 지역에서도 주말 미사 참석률은 1970년대 90%에서 2016년 36%로 폭락했다. 미국에서도 2019년 여론조사 결과, 가톨릭 신자의 37%가 성범죄 스캔들로 인해 교회를 떠날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교회에 미래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가톨릭 교회는 빠르게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이 같은 쇠퇴는 결국 자업자득이다. 교회는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앞에서조차 진실과 정의보다 체면과 권력을 우선시했고, 이는 신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설령 교회가 지금에서야 개혁을 약속한다 하더라도, 이미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많은 이들은 이제 교회가 더 이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바라는 심정이다. 결국, 아이들의 순수함을 짓밟고도 회개하지 않은 조직에 남은 것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대중의 단호한 외면일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추문은 가톨릭 교회 쇠퇴의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며, 교회는 스스로 자초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